DRAW ON PAGE
Part 01. 2025.02.02 - 02.08
Part 02. 2025.02.10 - 02.16
PLLI,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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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 On Page> | 기획의도

우리에게 잊혀진 책들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바라보는 관점은 때로 너무 한정적이라고 느낍니다. 본 기획전은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헌책을 재해석하며, 책들이 새로운 예술적 숨결을 얻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책을 해체하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며 한 장 한 장을 새롭게 탈바꿈시킵니다. 단순히 시각적 결과물을 넘어, 책과 작가, 그리고 관객 간의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각 작가가 선택한 책의 페이지들은 에스키스(밑그림)와도 같고, 때로는 개인적인 일기의 조각처럼 보이며,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페이지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나열됩니다. 이는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록된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관객은 이 작품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재생과 창조의 경계에서 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게 됩니다.

본 전시에 사용된 책들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닙니다. 이는 버려진 책들이 예술적 오브제로 변모하며,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입니다. 잊혀진 페이지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다시 살아나고, 관객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합니다.

<Draw on page>전은 책이라는 물성을 넘어 창조적 과정과 가능성을 탐구하며, 우리가 주변의 사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그저 지나쳤던 책들이 어떻게 다시 주목받고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실험입니다.

- Director 김종혁

또 다른 '형섭'의 수학의 정석
또 다른 '형섭'의 수학의 정석
중고 수학의 정석 10,400원에 구입
중고 수학의 정석 10,400원에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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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for Exhibition

01.
김종혁 작가가 본인의 개인전에서 시도했던 기획을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하고 싶다며 참여를 제안했다. 버려진 책, 중고 책을 스케치북 삼아 모든 페이지에 작업을 하고 그 페이지를 낱장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이다. 김종혁 작가가 생각한 기획 의도와는 별개로, 단순히 재미있겠다고 생각하여 참여하기로 했다. 전시명은 <Draw On Page>.

02.
작업할 책을 선택하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한글로 쓰인 책에 그림을 그리자니 글쓴이가 불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작업을 할 때 자꾸만 글이 눈에 들어와 신경 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로 쓰인 책, 기왕이면 내가 아주 읽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 다만 한글 번역본으로라도 한번은 읽어본 책을 선택하고 싶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방문했다. 외국 소설 원서들이 있는 책장 앞에 서서 여러 책을 꺼내 훑어보았지만 역시나 읽어 본 적이 없는 책들뿐이었다. 서점에 있는 책 검색을 통해 읽어본 책 몇 권을 검색해 보았으나 원어로 된 책은 찾기 어려웠다. 영화로라도 본 소설이 있기에 그것을 고를까 하던 찰나, 바로 옆 책장에 학습 교재가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학의 정석.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다른 학습 교재에 비해 여전히 자신만의 정체성이 무엇보다 확실한 책.
지금은 그림 작업을 하고 대학은 체육학과를 나왔지만, 고등학생 때는 이과반이었다. 생각해 보면 수학의 정석은 당시에 가장 많이 본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첫째, 나와 아주 연관(?)이 깊다. 둘째, 지금 최선을 다해 암만 들여다보아도 문제를 읽는 것 외에 풀이는 거의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내가 아주 읽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에 가깝다. 셋째, 학습 교재에 낙서를 합법적(?)으로 해볼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생각이 한순간에 들면서 단숨에 수학의 정석에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예전과 달라진 것인지 수학의 정석 종류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중 어떤 수학의 정석을 고를까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 칸 한 칸 찬찬히 훑어보던 중 딱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운명이 아닐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책머리에, 그러니까 책 윗부분에 유일하게 이전 책 소유자였을 이름이 적힌 수학의 정석이 있었는데,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형섭'. 아는 이들은 알 테지만 내 작가명은 리오지, 본명은 지형섭이다.

03.
이번 <Draw On Page> 전시에서는 각 작가가 책을 구입한 금액이 작품 판매 금액이 된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중고책을 1만 원에 구입했으면, 그 작가가 작업한 낱장 작품 하나당 1만 원이 되는 것이다.
내가 구입한 수학의 정석은 10,400원.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내 작품 1개 가격도 10,400원.

04.
수학의 정석에서 글자를 지우고 낙서의 정(情)이라 제목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잘 몰랐으나 정(情)에는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마음의 작용, 사랑, 본성, 진리, 멋, 정취, 진심, 성심, 참마음 등. 
어려서는 해보지 못했던 학습 교재에 낙서를 한다-특별한 목적도, 어떤 의미도 담지 않고 그저 실컷 그려보겠다-는 생각과 그만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작업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낙서라는 행위를 솔직한 마음을 보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에 이번 작업이 정(情)이 가진 여러 뜻과 연결이 되고 보는 이들에게도 어떤 정(情)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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